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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무형문화재 하려고 퇴사했습니다

2022.11.16
설지희의 ‘없었는데 있었습니다’
무형유산 큐레이터, 프롬히어 설지희 대표는
잊히는 문화유산을 현대적인 수공예품에 접목해 이어가고 있습니다.

10년간 다녔던 반도체 회사를 나와, 무형문화재 이수자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퇴사 사유는 ‘사명감’이었어요. 무형문화재 보유자였던 아버지의 명맥을 잇기 위해서였죠. 그에겐 아주 큰 결심이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이수자는 절실함과 사명감으로 무형문화재의 명맥을 잇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형유산 큐레이터 설지희 대표는 이들을 기억하고 더 많이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올드하지 않는 OLD를 전하는 진국인 설지희 

프롬히어 설지희 대표

안녕하세요, 전통을 잇는 분들의 이야기를 담는 무형유산 큐레이터 설지희 입니다. 올드하지 않는 OLD를 전하는 회사,프롬히어의 대표이기도 해요. 

 

Q. 프롬히어는 어떤 곳인가요?

무형문화재와 공예가를 발굴해 세상과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공예가들이 만든 고퀄리티의 전통 예술품을 대중들이 쉽게 구매할 수 있는 큐레이션 샵을 만들었죠.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여 콘텐츠도 만들고 전시나 공연도 하고 있어요.

 

프롬히어 소개글

Q. 처음에는 ‘썰지연구소’로 시작했다던데.

와디즈 펀딩에서 솟대 디퓨저로 성공을 거두면서 비즈니스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이름을 딴 ‘썰지연구소’를 창업했죠. 2022년, ‘프롬히어’로 사업자를 변경하면서 더 다양한 공예품과 무형 유산을 이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어요.

 

전통을 기록하는 시작점 ‘사람’

프롬히어가 추구하는 것 프롬히어가 추구하는 것 프롬히어가 추구하는 것

Q. 프롬히어에 올라오는 콘텐츠들을 모두 읽어봤는데, 흥미롭더라고요.
콘텐츠를 만들 때 고려하는 점이 있나요?

세 가지를 고려해요. 지역성, 시간성(세월성) 그리고 사람.
먼저 지역성을 고려한다는 건 저희가 있는 전주를 중심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해 점점 넓혀가겠다는 말이에요.
두 번째는 세월이 가면서 잊히기 쉬운 종목을 조명하려고 해요. 특히 종이우산을 만드는 우산장, 전통 부채를 만드는 선자장 그리고 말총으로 망건을 만드는 망건장은 시간이 가면서 많이 잊히고 있어요. 이처럼 우리나라 국민이 살면서 ‘이걸 사 봐야지!’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더 알리려고 해요. 무형 유산이 주는 가치와 아름다움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 잊히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Q. 마지막으로 사람을 고려한다고요?

그게 핵심이에요. 낯선 무형유산을 대중에게 와닿게 하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먼저, 이 분야에 관심을 두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시작점은 ‘사람’이 가진 이야기였어요. 다른 분야라 하더라도 누군가 살아온 과정에서 나의 삶과 닮은 점이 한두 가지씩 있더라고요. 그렇게 공통점을 만들어줌으로써 관심이 생기게끔 만들고 싶었어요. 

또 개인마다 글씨와 창법이 다르듯이 같은 분야의 장인이라 하더라도 누가 만들었냐에 따라 디테일이 달라요. 저희는 거기에 담긴 기술과 스토리도 담고 있어요.

 

무형문화재가 진지하다는 착각!

우산장 윤규상 보유자와 그의 아들 윤성호 이수자

Q. 기억에 남는 무형문화재 보유자 혹은 이수자가 있나요? 

우산장 윤규상 보유자의 아들, 윤성호 이수자가 생각나네요. 이수자는 10년간 직장생활을 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아버지의 명맥을 이을 사람이 없자 10년 경력을 포기하고 이수자가 된 거예요.

윤규상 보유자는 아들이 진로를 결정할 때 ‘여긴(무형문화재) 돈이 안 되니 다른 전공을 하라’고 했대요. 그래서 반도체 분야에서 일한 거예요. 반도체 업종에 계속 있었다면 큰 프로젝트도 맡게 될 테고 그에 따른 승진의 기회도 많았겠죠.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에요.

 

Q. 이런 사례가 많나요?

무형 유산 중에도 특히 전통 미술, 공예 종목은 가족이 대를 잇는 경우가 많아요. 자식들이 좋아서 잇는다기 보다는 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제자들은 계속 줄어들어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우산장 윤규상 보유자의 아들, 윤성호 이수자

프롬히어

Q. 제자들은 왜 없을까요?

윤규상 보유자가 언급했듯 경제적 이유가 있을 거예요. 돈 안 되는 종목이 많거든요. 부모님이 명예직으로 인정받았다면 명성을 잇는 게 부담될 수도 있겠죠. 게다가 시대가 많이 변했어요. 요즘은 나의 루틴과 취향, 적성을 따르는 시대란 말이에요. 그러니 제자가 줄어들 수 밖에요.

 

무형문화재 이수자 무형문화재 이수자에 대한 편견

Q. 그런데도 무형문화재 이수자가 된 사람들은
뚝심 있으면서 근엄하고 진지할 것 같아요.

‘무형문화재’ 하면 매일 고뇌에 빠진 것 같은 모습으로 있을 것 같죠? 하지만 우리와 똑같더라고요. 같이 프렌차이즈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시고 좋은 애플리케이션이 나오면 바로 써 봐요. 만날수록 친근하게 느껴져요.

 

Q.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나요?

우산장 윤성호 이수자는 조각 우산 기획 단계에서 오히려 ‘이렇게도 해 봐요, 저렇게도 해 봐요.’ 제안했어요. 저희가 피드백하는 부분도 바로 수용해서 반영해주고요. 

악기장 임선빈 보유자의 아들, 임동국 전승 교육자는 처음 만났을 때 개구쟁이 같았어요. 아버지 밑에서 힘들다고 불평하면서도 꿋꿋하게 해내요. 납품할 북을 들고 가면서 ‘먹고 살기 힘들어요~’ 얘기하는데 인간미 넘친다고 생각했어요.

  

아쉬움을 간직한 그날의 기록

이수자의 이야기를 기록하다

Q. 많은 보유자, 이수자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면서
특히 아쉬웠던 점이 있나요? 

무형문화재 구술 자서전을 편집했던 적이 있어요. 5~6년 전의 채록을 토대로 발행하는 거였죠. 기록을 읽다 보니 ‘이분들을 직접 만나 뵀다면 좋았겠다’ 싶은 순간이 많았어요.

 

Q. 기억에 남는 분을 소개해 준다면요.

두 분이 기억에 남아요. 한 분은 한산모시짜기 故 문정옥 보유자예요. 어깨너머로 모시 짜기 기술을 배웠지만, 수준급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대요. 재능이 있었던 거죠. 한산모시 시장이 컸던 시절엔 부르는 게 값으로 팔렸대요. 이 얘기를 참 맛깔나게 살려줬는데 기록으로만 남아 있으니 아쉬웠어요. 

 

망건장 故 이수여 보유자 망건 망건장 故 이수여 보유자 망건

Q. 또 한 분은요?

망건장 故 이수여 보유자인데요. 사람들끼리 오손도손 둘러앉아 망건을 짜던 중 누가 ‘노래 한 번 불러봐~’ 했대요. 그때 선생님이 한 곡조 뽑았는데 참 잘한다며 칭찬 일색이었다는 기록이 있었어요. 이런 얘기들을 옆에서 들었으면 얼마나 생생했을까 싶어요.

 

한국적인 게 뭐야?

공예품

Q. 최근엔 전통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다는 걸 느끼신다고요.

윤태성 유리 공예가를 만나 이야기 나누면서 느꼈어요. 요즘 사람들은 공예에 대한 안목이 높아졌대요. 예전 같으면 공예품 가격을 무턱대고 깎으려고 했다면 지금은 제값을 치른대요. 공력을 그대로 인정하고 대가를 지불한다는 게 많이 바뀐 부분이죠.

 

Q. 프롬히어도 이런 변화에 발맞추고 있나요?

저희도 MZ세대들과 어떻게 교감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그 접점이 ‘환경’이라는 걸 알게 됐죠. 공예의 큰 특징은 손수 만든다는 거예요. 그래서 에코백, 파우치 만들기 또는 환경 굿즈 만들기를 접목했어요. 

보통 공예라고 하면 예술 ‘예’자에 꽂히는 경우가 많아요.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생각하는 거죠. 이처럼 공예를 낯설게 느꼈던 사람도 밀접하게 느끼도록 하는 활동을 준비하고 있어요.

 

아마존에서 인기 있던 호미

Q. 해외 진출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당연히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먼저 성공하고 해외로 나가면 좋겠지만,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고 더 성장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호미가 아마존 가드닝 분야에서 인기 있었던 이유는 나라마다 이색적인 물건을 찾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우리는 호미를 떠올렸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고 다니던 기억이 있잖아요. 우리에겐 신기한 물건이 아니지만, 해외에서는 ‘한국적인 게 뭐야?’라고 했을 때 호미라고 말 할 수 있는 거죠.

 

 Q. 이날치 밴드도 해외에서 폭발적이었잖아요.

이날치 밴드도 같은 맥락이에요. 우리나라의 대단한 소리꾼들이 ‘외국에서도 우리 소리를 알아줄까?’ 했다가 대박 난 거예요.

 

전통으로도 잘 먹고 잘살기

프롬히어가 생각하는 공예 프롬히어가 생각하는 공예 프롬히어가 생각하는 공예

Q. 프롬히어의 목표가 있나요?

전통으로는 먹고살기 힘들다고 하지만,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시장이 활성화되면 수요와 공급이 원활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싶고요. 결론적으로는 공급을 활성화하고 싶어요. 무형문화재를 하겠다는 사람이 많아지게 만드는 게 저희 목표예요.

 

전통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며 무형유산을 이어가는 사람들. 인터뷰 내내 전통을 얘기하는 설지희 대표의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보유자와 이수자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오늘도 설지희 대표의 손과 다리는 바삐 움직입니다. 

 

진국인 ‘없었는데 있었습니다’는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잊고 살았던 소중한 것들을
자신만의 방식과 속도로 지켜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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