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악기로 록을 연주합니다
2022.09.01어떤 음악을 좋아하시나요? 케이팝? 힙합? 아니면 클래식?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세계로 뻗어나가는 밴드가 있습니다. 국악에 서양 악기를 더해 과거와 현재를 연주하는 ‘잠비나이’. 그들을 프로듀싱하는 김형군 대표를 만났습니다.
팬에서 프로듀서가 되다
밴드 ‘잠비나이’의 소속사, 더 텔 테일 하트의 대표 김형군입니다. 저 혼자 운영하는 1인 음반사고, 소속 예술가는 잠비나이 뿐입니다.
이전에 한 레코드 사에서 근무할 때, 소속된 예술가들이 10팀 이상이었어요. 잠비나이의 스케줄이 늘어나면서 다른 밴드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죠. 모두를 끌고 갈 순 없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결국 대표직을 내려놓고 잠비나이에 집중하기 위해 더 텔 테일 하트를 설립했죠.
잠비나이는 전통 음악을 기반으로 현대 음악 요소들을 섞어 새로운 장르를 만드는 밴드입니다. 잠비나이란 이름은 아무런 뜻이 없습니다. 공연을 해야 하니 멤버들에게 밴드명을 빨리 정해달라고 했습니다. 멤버 보민씨가 버스를 타고 집에 가다가 갑자기 ‘잠비나이’란 단어가 떠올랐대요. 다른 멤버들에게 물어봤더니 모두 좋다고 해서 잠비나이가 됐습니다.
잠비나이 리더인 일우 씨와 저는 인디 레이블에서 아티스트와 직원으로 처음 만났어요. 당시 창작 국악 공연을 올리는 상황이 생겼고, 일우 씨에게 국악기로 편곡한 연주를 할 수 있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친구들과 새롭게 만든 밴드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팀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일우가 하는 건 다 좋지’라는 생각으로 공연을 맡겼죠. 그 팀이 바로 잠비나이가 됐습니다.
무대를 시작하자마자 숨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로 관객들이 집중했어요. 공연이 끝난 후 멤버들에게 같이 일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고 그 후 지금까지 약 10년간 함께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마 전 세계에서 잠비나이를 제일 좋아할걸요? 좋아하는 아티스트랑 함께 일하고 있는 거잖아요. 저는 프로듀서지만 성공한 팬이기도 합니다.
첫 공연, 앨범이 완판되다
잠비나이 곡은 모두 서사가 있다는 것이 특징이에요. 잠비나이의 연주를 보면 시간 가는 걸 못 느낄 정도로 다 연결되어 있어요. 멤버들 간의 끈끈한 신뢰 덕분에 공연의 몰입도가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도 그렇지만 관객들도 자신만의 세계가 있잖아요. 잠비나이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우리와 비슷한, 열린 음악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12년에 타이틀곡 <소멸의 시간>을 유튜브에 업로드했는데요. 한 웹진에 저희가 소개됐습니다. 마침 해외 공연을 생각하던 때, 해외 에이전시에서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당장 비행기표를 어디서 구할지 고민됐어요. 그러다 서울 아트 마켓 공식 쇼케이스에 선정되면 항공권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무작정 도전했고 선발됐어요. 워맥스, 에이팜, 뮤콘, 잔다리 페스타 등 저희가 공연할 수 있는 상황을 많이 만들었어요.
마켓 특성상 일반 관객은 거의 없거든요. 음악계에서 일하는 분들이 다수였고 쇼케이스를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5분 안에 자리를 뜰 수도 있잖아요. 공연장 한구석에 명함 3~400장을 뒀는데 거의 15분 만에 사라졌어요. 그리고 1년 뒤부터 본격적으로 투어 스케줄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코첼라, 글래스톤 베리에서도 공연했고요. 세계 최고의 메탈 페스티벌이라 불리는 헬 페스트에서도 공연했어요. 그리고 로스킬레 페스티벌, 세르비아 엑시트 페스티벌, 슬로바키 포어 페스티벌 등등 유명한 페스티벌 무대는 거의 다 서봤어요.
첫 해외 공연은 2013년 봄, 헬싱키 월드 빌리지 페스티벌이었어요. 당시 제가 CD 50장을 챙겨갔습니다. 멤버 중 한 명이 “누가 산다고 그걸 갖고 와요”라고 했지만 10분 만에 CD를 다 팔았어요. 심지어 300명이 와서 CD를 사겠다고 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가장 자랑스러웠던 건 올해 120년 된 네덜란드 흐로닝언의 ‘베라’라는 공연장에 이름이 새겨진 거예요. 베라는 U2, 너바나, 펄 잼 등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공연을 한 곳인데요. 매해, 공연한 예술가 중 한 팀을 뽑아서 공연장 벽면에 이름을 새겨줍니다. 2019년에는 저희가 한국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로 이름을 새겼어요. 팬데믹 상황이라 직접 가서 보지 못해 참 아쉽습니다.
누구도 잠비나이만큼 잘하진 못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공연을 했습니다. 저희가 경험했던 가장 큰 무대 중 하나였어요. ‘우리가 이것까지 했네’라는 기분이 들었고 멤버들도, 저도 참 신기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코로나19 여파로 해외 투어가 대부분 중단되거나 연기됐어요. 하지만 국제 활동을 계속하려고 실시간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마침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라는 공연이 온라인으로 열린다고 해서 준비한 영상을 공개하게 됐고요. 이를 계기로 밥 보일런이 진행하는 비디오 연주 프로그램 ‘타이니 데스크’에서 공연 제안을 받았습니다.
*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 :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열리는 뮤직 페스티벌
* 타이니 데스크 : 밥 보일런이 진행하는 비디오 연주 프로그램
이왕 공연할 거면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박물관에서 본 디지털 디자인 회사, 디스트릭트의 전시가 떠올랐어요. 무작정 디스트릭트에 연락해서 ‘저희가 돈은 없는데 예술을 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씀드렸어요. 그러니까 “멋있는 건 일단 하자”고 답해주셨습니다. 영상을 연출하는 감독이 실제 타이니 데스크 사무실과 똑같은 사이즈로 3D 애니메이션 작업을 해주셨습니다.
가장 좋았던 기사가 있는데요. ‘굉장한 고요함 안에서 순식간에 굉음으로 전환하는 예술가들은 예전부터 있었다. 지금도 많지만, 누구도 잠비나이만큼 잘하진 못한다’란 내용이었습니다.
뿌리는 전통인 ‘요즘’ 음악을 합니다
처음 투어를 시작할 때만 해도 한국 음악은 ‘케이팝’ 혹은 아예 ‘전통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훨씬 다양하고 역동적인 아티스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는 전통에 기반을 둔 요즘 시대의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저희가 전통 음악을 망친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전통은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예술가의 성향에 맞춰 새로움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다양한 음악이 있고, 저희는 이를 알리고 있습니다.
제겐 멤버들이 자식입니다. ‘우리 엄마가 나에게 뭔가 애타는 마음이 있었다면 이런 마음이었겠다’ 싶어요. 멤버들이 저를 함께 고민을 나누고 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잠비나이를 본인들만의 정체성이 확실히 있는 멋있는 예술가로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장르가 달라져도 음악을 듣는 순간, ‘아, 이거 누구네’라고 떠오르는 것처럼요.
전통 악기를 통해 새로운 장르를 만들고 멋을 창조하는 밴드 잠비나이.
본질 잊지 않으면서도 경계 없는 그들의 음악이 더 넓고 멀리 울려 퍼지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