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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통에 빠진 덕업일치 끝판왕

2022.11.09
설지희의 ‘없었는데 있었습니다’
무형유산 큐레이터, 프롬히어 설지희 대표는
잊히는 문화유산을 현대적인 수공예품에 접목해 이어가고 있습니다.

취미가 직업이 될 때, 사람들은 걱정합니다. “그러다 취미까지 잃어버리는 거 아냐?”라고요. 하지만 덕업일치의 삶을 사는 설지희 대표는 오히려 좋다고 말합니다. 어릴 때부터 전통에 푹 빠진 그는 ‘프롬히어’를 창업해 끊임없이 ‘덕질’하고 있습니다. 전통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이 남다른 설지희 대표를 만나 이야기 나눴습니다.

 

올드하지 않는 OLD를 전하는 진국인 설지희 

프롬희어 대표 설지희

안녕하세요, 전통을 ‘덕질’하는 무형유산 큐레이터 설지희 입니다. 올드하지 않는 OLD를 전하는 회사,프롬히어의 대표이기도 해요. 

 

Q. 무형유산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처음 들어요.

사람과 사람 간에 이어지는 문화를 무형유산이라고 해요. 예를 들어 소리꾼이나 가야금 연주자, 합죽선이나 한복을 제작하는 장인들이 있죠. 큐레이터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자주 들어 본 단어일 거예요. 전시된 작품을 수집, 보관하고 전시를 기획해 대중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직업이죠. 낯선 무형유산을 많은 분께 알리고 연결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제가 붙인 이름이에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답을 찾던 4년의 시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답을 찾던 4년의 시간

Q. 직업까지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릴 때부터 전통을 좋아해 사극을 즐겨 봤어요. 볼 때마다 복식이나 문화 전반에 있어 고증이 모두 다르더라고요.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 입학했죠. 

좋아하는 걸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여기 온 사람들은 저처럼 전통이 좋아서 찾아온 거예요. 하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학생들은 ‘(돈 벌 수 있는) 가망이 없다.’며 문화재 연구소나 문화재청 공무원을 준비했어요. 연구원으로 빠지는 경우도 많았죠. 문화 예술을 비롯해 전통 분야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직업으로도 먹고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Q. 전통 대학교라니, 생소하네요.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존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학교예요. 특수한 학교라 학생 수도 적은 편이에요.

지도 교수님이 오리엔테이션 때 한 말이 있어요. “4년 동안, 전통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답을 내리는 시간이면 좋겠다.” 이 말은 제게 큰 울림을 줬어요. 지금껏 전통에 관심은 있었지만 먹고 살 궁리는 안 했거든요. 

 

설지희 대표

Q. 그래서 박사 과정까지 하신 거예요?

원래는 한복에 관심이 있어서 섬유 전공을 했어요. 그런데 바느질이 적성에 안 맞더라고요.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다시 생각했죠. 전통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었어요. 무형유산 생태계를 이해하는 데 시간을 쏟고 싶어 이론 반으로 전공을 옮겼어요. 알면 알수록 4년이란 시간이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석사를 거쳐 박사 과정까지 하게 됐습니다. 

 

전통, 드디어 통했다!

프롬히어 설지희 대표

Q. 창업 계기를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국립무형유산원이 첫 직장이었어요. 1년간 일했죠. 그때 두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첫째는 역시 전통과 관련한 일은 재밌다. 둘째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많겠다.

아무래도 국가기관이다 보니 프로젝트가 더 많이 뻗어나가질 못했어요. 예를 들어 고서를 디지털화하는 프로젝트를 한다면, 디지털 도서로 만들고 끝나는 거죠. 이걸 가지고 영상도 만들고 사운드 북으로도 만들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국가기관이 하고 싶어도 못 하는 분야를 건드려보자 싶었어요. 그래서 창업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Q. 창업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국립무형유산원을 퇴사하고 유럽 여행을 잠시 다녀왔어요.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시간이었죠.

본격적으로 창업하기 전, 전통문화 해커톤에 참여했어요. 해커톤이란 팀을 짠 후 정해진 기간 동안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시제품까지 만드는 경진 대회를 말해요. 결론은 탈락이었죠. 그때 제가 세운 가설은 ‘무형문화재와 공예품은 비싸서 안 사는 게 아니다. 브랜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였어요. 설득력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사례를 만들자!’라고 생각했어요.

설지희 대표가 처음 만든 제품은?

Q. 처음 만든 제품이 뭐예요?

전주에 있는 풍남문을 산책하던 길이었어요. 거기서 작은 솟대를 깎고 있는 장인을 만났어요. 옛날 솟대는 2미터 정도의 높이였어요. 마을 입구에 세워져 수호신 역할을 했죠. 이 작은 솟대로 뭔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어 몇 개 사 왔어요. 마침 제 옆에 디퓨저가 하나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솟대 디퓨저를 만들었고 와디즈에서 펀딩을 열었어요. 준비한 리워드가 이틀 만에 동났어요. 대 성공인 거죠.

 

솟대 디퓨저Q. 준비 과정은 수월했나요?

힘들었죠. 동네 사진관에 가서 제품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어요. 돈이 얼마 없다며 애걸복걸했어요. 디퓨저도 남부시장의 한 공방 사장님한테 부탁했어요. 저희 취지와 사정을 설명했죠. 스토리도 밤새워가며 정말 열심히 썼어요. 

힘들긴 했지만 많은 분이 가치에 공감해 주고 펀딩해 줬다는 게 참 기뻤어요. 제 가설이 통한 거잖아요. 

 

Q. 그 이후로는 어떤 걸 만들었어요?

다양한 것을 만들었죠. 우산 장인 분들과 조각 우산을 만들었어요. 한지로 만든 편지지도 만들고요. 많은 시도를 했어요.

 

좋아하는 일을 더 좋아할 수 있는 힘

좋아하는 일을 더 좋아할 수 있는 힘

Q. 가설이 딱 맞아떨어졌네요!
지금은 사업이 안정됐나요?

여전히 증명해 나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처음 2년은 정말 외로웠어요. 정돈되지 않은 길을 개척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제가 전통을 정말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흔히 ‘덕질’한다고 표현하는데, 전통은 덕질하기 힘든 분야예요. ‘덕질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를 보면 시장의 규모를 알 수 있어요. 좋아하는 것에 깊이 빠지려면 규모가 그만큼 커야 해요. 케이팝은 돈이 없지 콘텐츠가 모자라지 않잖아요? 전통은 종사자가 되지 않는 한 덕질하기 어려워요. 

 

Q. 대부분 좋아하는 일도 직업이 되면 점점 싫어진다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많은 사람이 얘기하는 것처럼 취미가 없어진 건 맞아요. 하지만 지금의 저는 정말 행복해요. 좋아하는 일을 더 좋아할 수 있게 된 거예요.

 

프롬히어 설지희 대표

Q. 진정한 덕업일치네요. 그렇다면 대표님이 생각할 때,
전통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해서 빠른 성장을 이뤘어요. 하지만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오랜 역사가 기반이 돼서 차근차근 밟아 나가야 해요. 성장을 위해선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단 거죠. 제가 좋아하는 ‘축적의 길’이란 책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가장 좋은 피아노는 피아노를 가장 오래 만든 곳에서 나온다.’ 많은 경험이 쌓이고 그것들이 소화돼야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거죠.

 

Q. 우리는 가져야 할 자세는요?

변화에 대해 수용적인 자세를 가져야 해요. 예를 들어 유럽의 양복은 오래된 무형유산이에요. 하지만 유럽에서 양복 스타일이 바뀐 것으로 진짜와 가짜를 논하지 않아요. 우리나라 전통도 성장하기 위해선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통을 유연하게 대하는 자세를 가지고 소생시켜야 해요.

 

전통하는 사람이 더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전통하는 사람이 더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Q. 대표님의 못다 한 꿈이 있을까요?

프랑스에는 공예 장식 미술 박물관도 있고 일본도 공예로 유명하잖아요. 그래서 석사 시절에 유학 가보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유학 다녀온 사람들이 이런 얘길 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패션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의 파슨스에 간다고 해요. 그럼 교수님이 ‘한국의 전통 복식은 뭐니?’하고 물어본대요. 몇몇은 제대로 대답을 못 했대요.

그 얘길 듣고 누군가 한국의 공예에 대해 묻는다면 바로 대답할 수 있을 때 유학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자국의 것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이국의 문화를 배우러 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Q. 그 이후로 유학을 다녀오셨나요?

이제는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프롬히어를 운영하며 애써주는 식구들이 있기 때문에 갈 수가 없네요. 

 

프롬히어 식구들

Q.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돈 잘 버는 회사보다는 무형유산 시장을 성장시킬 수 있는 사례를 많이 만드는 회사가 되고 싶어요. 가끔 ‘왜 이렇게밖에 안 될까?, 왜 더 날개를 펼치지 못할까?’ 하는 생각도 해요. 하지만 전문성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아가려고 해요. 

전통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저를 보고 두려움 없이 뛰어들게 만들고 싶어요. 더 나아가 무형문화재 선생님들이나 공예가들도 더 큰 꿈을 꾸게 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새로운 직업까지 만든 설지희 대표의 용기.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개척하며 전통 공예를 이어가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다음 글은 전통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며 무형유산을 이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진국인 ‘없었는데 있었습니다’는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잊고 살았던 소중한 것들을
자신만의 방식과 속도로 지켜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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