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디즈 펀딩으로 다시 살아난 가게를 아시나요? 사장님조차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며 무너졌던 안암의 명물, 영철버거의 이야기입니다. 무너진 영철버거를 살리기위해
2700명의 서포터가 모였고, 햄버거는 거짓말처럼 다시 구워졌습니다.서포터가 바꾼 기적과 같은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마음을 굽는 진국인 이영철
안녕하세요, 두 번의 실패를 겪고, 세 번 일어선 영철버거의 이영철 입니다.
Q. 영철버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중 IMF가 터졌어요. 새로운 걸 시작해보자 해서 노점으로 뛰어들게 됐습니다. 처음 시작하고 2년동안 정말 녹록지 않았습니다. 우연히 고려대에 둥지를 틀게 되었고 나름 메뉴 개발도 했죠. 처음에는 밥 세 끼 먹는 게 목표인 시절도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학생들과 교류하고 유대 관계도 쌓아가며 그 당시에는 밥을 굶어도 좋겠다고 느꼈습니다. 여기서 학생들과 같이 생활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으니까요.
Q. 처음 노점을 시작한 나이가 32살이셨다고요.
굉장히 젊은 나이인데 막막하진 않으셨나요?
삶을 막연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새로운 걸 도전한다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노점을 바라보는 남들의 시선이나 편견이 두려웠지,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해 본 적은 없습니다.
Q. 남들의 시선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동경하던 대학생들과 소통하는 게 가장 큰 원동력이었습니다. 대학 생활을 꿈꿔오던 명문대 학생들과 얘기하고 친구가 된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환경이나 상황 자체는 불행했지만, 그 행복으로 인해서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Q. 노점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으신가요?
추운 겨울이었는데 김치찌개를 한 그릇 배달시켜서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자주 오던 친구가 들어오길래 “야 밥 먹자” 하니까 “네” 하고 바로 저랑 같이 밥을 먹더라고요.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찌릿찌릿합니다. 너무나 편하게 대해주는 모습이 감동이었죠. 지금도 가끔 농담으로 “아저씨 김치찌개 한 그릇만 사주라” 얘기하면 시간만 내시면 100그릇도 사드릴 수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세상
Q. 영철버거는 가성비 좋은 버거로 유명했습니다.
가성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저렴한 가격에 파셨나요?
가정이 있으니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했죠. 하지만 학생들과 하루를 보내는 것에 큰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재밌고 행복하다 보니까 학생들과 계속 함께 하고 싶었고 한 편으로는 학생들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격을 올려야 할 때도 있었지만 믿음을 지키고 싶어서 꽤 오랜 시간 저렴한 가격을 유지했습니다.
버거 하나에 천 원, 콜라는 무한리필. 이제 와서 고백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버거 하나에 콜라 1.5L씩 먹었다고. 그래도 그렇게 먹고 가면 다음에 또 와주니까요. 이윤보다는 공동체라는 것이 더 중요했죠.
Q. 사장님 하면 또 기부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기부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세상을 살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학생들이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니까 저도 뭔가 이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어마어마한 학교가 내 돈을 받아줄까? 안 받아주면 창피해서 동네에서 장사를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도 들었죠. 가장 기뻤던 건 저희 어머니가 너무 좋아하셨어요. ‘내 아들 장하다’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굉장히 뿌듯했고 행복했습니다.
Q. 고대의 명물로써 여러 가지 수식어 중 어떤 수식어가 가장 마음에 드시나요?
노점의 신화, 맨손의 신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입니다. 듣기 좋잖아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렙니다. 무에서 유를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 제 노력에 대해서 인정받는 말이라 가슴이 벅차고 들을 때마다 행복합니다.
“사장님, 저희가 돕고 싶어요”
Q. 영철버거는 언제 처음 좌절을 겪었나요?
2009년에 과감한 혁신을 시도했었습니다. 영원히 승승장구할 수 있는 가게로 만들고자 도전했는데 그 이후로 실패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2009년에 웰빙이 트렌드가 되면서 고급화 전략을 시도했습니다. 체인점을 10개나 냈죠. 처음에는 영철버거 인지도 덕분에 방문하는 소비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한 15년은 앞서나간 것 같아요. 그 당시 가격이 7,500원, 6,500원 정도였는데 지금도 그때 왜 이런 황당한 생각을 했을까 합니다.
Q. 와디즈를 만나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면서요?
최대한 실패를 안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은행에서 빚을 내고 사채를 쓰기도 했죠. 여기서 실패하면 끝이라는 생각에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안 되는 건 안 되더라고요. 2015년 6월에 본점까지 폐점하게 됐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지칠 대로 지쳤고 반 포기 상태로 한동안 모든 연락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학생에게 문자가 온 거예요. 도와주고 싶다며 와디즈 펀딩 얘기를 하더라고요. 많이 고민했었습니다. 자식보다 어린 학생들이 오천 원 만 원씩 모은 돈인데 또 실패하게 되면 어떡하나 걱정이 컸어요. 아내는 말리더라고요. 잘되면 몰라도 안 되면 마음의 짐을 어떻게 지고 가겠느냐고. 고민 끝에 영철버거가 만들어 온 이야기를 믿고 다시 한번 일어서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학생들이 펀딩 여는 것을 도와줬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Q. 처음 목표 금액이 800만 원이었는데 하루 만에 2천만 원이 넘었다고요.
2,765명이 함께한 성공한 펀딩이었습니다.
하루 만에 2천만 원이 모였고 2주 만에 7천만 원을 달성했습니다. 금액을 떠나서 제 입장에서는 책임감이 어마어마하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주고 기대한다는 거니까요. 받고 나니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참 망설여지더라고요. 다시 돌려줘야 하나 고민도 했었어요.
서포터님의 응원,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
Q. 펀딩 이후에 다시 한번 아픔을 겪으셨다고요.
재기하고 마음이 급했습니다. 빨리 학생들에게 받은 걸 돌려줘야 편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백 평 가까이 되는 규모의 가게에서 시작했는데 30개월 동안 하루에 3시간씩 자면서 죽기 살기로 노력했죠. 그런데도 역부족이라고 느꼈어요. 빚을 지고 다시 실패를 경험하고 4개월 동안 집에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펀딩으로 보여준 우리 학생들의 열렬한 응원 덕분에 다시 한번 ‘끝까지 가자’ 하고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2019년 5월에 이공대 쪽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Q. 두 번 쓰러지고 세 번 일어나셨어요. 어떤 심경이셨나요?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영철버거가 쓰러져도 계속 일어날 수 있는 원동력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팬이 많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진실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팬들의 사랑을 받는 것만큼 기만하지 않고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모습들 덕분에 사랑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착하면 망한다?
Q. ‘영철버거’ 하면 꼭 빠지지 않는 단어가 ‘착한 버거’예요.
그런데 요즘은 착하면 망한다고 하잖아요.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착하니까 망해도 살려주는 거고, 착하니까 도와주는 겁니다. 저한테는 벗이 몇십만 명이고 스승이 몇십만 명이에요. 학생들을 보며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하고 실패해도 최선을 다해 이겨내려고 노력합니다. 학생들 역시 제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인생에서 많은 도움을 받지 않을까 생각해요. 늘 그런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려고 노력합니다. 학생들과는 힘든 일을 이겨냈을 때 안아주고 어깨도 두드려주는 멋진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Q. 사실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어려운데요.
사장님은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몇 번이나 일어서셨어요.
잘못된 건 빨리 인정하고 고쳐야 합니다. 아쉬워하고 괴로워하기만 하면 본인을 더 망가뜨리는 거예요. 요즘 취직하기 어려워졌는데 제가 항상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해요. ‘시간이 길어질 뿐이다. 그 안에서 스스로 자신을 얼마나 지켰느냐가 중요한 거지 다른 사람을 보며 위축되고 압박감을 느끼면 무너진다.’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해줍니다. 아무리 실패하고 힘들어해도 남들은 몰라줘요. 스스로 극복하고 이겨내야 합니다. 실패는 어떻게 보면 정말 큰 선생님이라고 생각해요.
Q. 영철버거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영철버거는 초심을 잃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잠깐 어렵고 힘들 순 있겠지만 극복하며 함께 더불어 살려고 노력합니다. 저 역시 이 세계가 너무 좋아요. 학생들과 함께하는 생활이 너무 행복합니다. 이 세계에 있으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늙는 줄 모르겠습니다. 저는 영원히 초심을 지킬 것입니다.
이영철 사장님은 인터뷰 내내 학생들에 대한 고마움과 영철버거가 만드는 진심을 말했습니다. 안암의 명물 ‘영철버거’가 빛나는 이유는 버거 곳곳에 ‘진심’을 넣어 만들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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