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로 2년간 4천여 명의 서포터의 마음을 얻은 메이커가 있습니다. 훼손된 작품을 복원해 대중들에게 한국화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청년 스타트업, 댓타임비인데요.
한 작품당 짧게는 2주, 보통은 한 달이 넘는 복원 과정을 거치며 오직 한국화만을 위해 긴 시간을 들인다는 메이커님의 작업 과정과 출판 펀딩으로 약 2억 원의 펀딩금을 달성한 비결을 물어봤습니다. 댓타임비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한국화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청년 스타트업 메이커, 댓타임비
안녕하세요, 한국화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청년 스타트업 댓타임비의 대표 송혜연입니다. 댓타임비는 공개되어 있지 않은, 훼손된 한국화를 발굴하고 복원해 한국화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곳이에요. 저를 포함한 세 명의 팀원들이 한국화에 조예가 깊으신 이종수 작가님과 한지 무형문화재 안치용 선생님, 그리고 20년 넘는 기간 동안 독자적인 인쇄 기술을 쌓아온 유화컴퍼니와 긴밀하게 협업하고 있죠.
저희는 작년 1월, 와디즈를 통해 첫 결과물인 <한국화 시리즈 1> 단원 김홍도편을 공개했어요. 그 후 <한국화 시리즈 2> 겸재 정선 편 프로젝트를 포함해 지난 2년간 다섯 번의 펀딩을 진행하면서, 4천 명에 가까운 서포터분들을 만났고요.
펀딩에 처음 도전했을 때, 설렘보다 걱정이 앞서던 순간이 기억나는데요. 그때의 불안함이 무색하게 정말 많은 서포터분들의 응원을 받았습니다. 그 덕분에 최근까지도 펀딩을 지속해오고 있고요.
훼손된 한국화에 대한 호기심이
사명감으로 변하기까지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고 그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한국화에 관심이 많은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20대 초반쯤 한국화 박물관에 갔는데 온통 그림이 갈색뿐인 거예요. 충격이 대단히 컸죠. ‘이 그림들은 왜 이렇게 훼손이 심할까?’, ‘어쩌면 내가 복원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순수한 호기심도 생겼고요.
그래서 나름의 조사를 거치다 보니, 한국화가 얼마나 안 좋은 상황에 처해있는지 그 실상을 알게 됐어요. 과거에 잦았던 전쟁과 약탈 때문에 훼손 상태가 심해 국공립 박물관에서조차 제대로 된 작품 전시나 복원 작업을 못 하고 있더라고요. 한국화의 아름다움을 접할 기회가 점점 사라져간다는 현실이 정말 안타까웠죠. 그렇게 호기심이 사명감으로 변하면서 댓타임비 프로젝트를 준비해 와디즈 펀딩으로 훼손된 한국화를 복원하고 책으로 펴내기 시작했어요.
예술 출판 펀딩의 성공을
판가름하는 열쇠
<한국화 시리즈 1> 단원 김홍도 편 펀딩을 처음 오픈했을 때는 솔직히 설렘보다 걱정이 컸어요. ‘정말 열심히 책을 만들었는데, 서포터분들이 이 노력을 알아봐 주실까?’, ‘바라는 만큼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란 생각에 불안했거든요. 특히 저희 제품은 의식주와 관련된 생활용품이 아니잖아요. ‘이 가격에 이 책을 펀딩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합당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저희처럼 문화 예술 분야의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프로젝트의 결과물에 대해 서포터분들이 충분히 ‘갖고 싶다’, ‘필요하다’라고 느낄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 이 프로젝트에 펀딩을 해주셔야 하는지,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유의미한지 스토리에 녹일 수 있어야 하는 거죠. 그 점이 프로젝트 성공을 판가름하는 열쇠가 되고요.
2년간 약 4천명의 서포터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
저희가 <한국화 시리즈>에서 어필한 점은 원화를 보는 듯한 느낌의 생생함이었어요. 지금까지 단원 김홍도와 겸재 정선의 작품을 다뤘는데요. 작품의 화질이 떨어지는 기존 한국화 도록에 비해 댓타임비의 <한국화 시리즈>는 원화를 보는 느낌이 나도록 완성도를 높였죠.
작품을 소유하고 있는 가문의 후손분들을 수소문해 직접 연락을 드린 만큼 고화질 이미지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또, 한지 무형문화재 안치용 선생님께 자문해 대다수의 한국화가 그려진 한지와 비슷한 재질로 책을 제작했죠.
한 작품을 복원하는 데만 보통 한 달이 걸릴 정도로 세심한 복원 작업을 거치기 때문에 독자분들이 진짜 그림을 보는 것 같은 책을 만들어낼 수 있었어요.
디지털 복원 작업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말씀 드리자면, 먼저 찢어진 그림의 부분들을 이어 붙이고, 사라진 색을 다시 살려내고, 갈변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쳐요. 물감이 얹어지기 전 한지나 비단의 원래 색감까지 고려하면서 작품의 전반적인 색상 밸런스를 맞추고요.
저희는 산속에 있는 작은 초가집이나 조그마한 사람까지도 작품을 확대해 가며 복원할 정도로 많은 공을 들여요. 책 한 권당 대략 1년이 넘는 제작 과정을 거쳐야 해서 난이도가 아주 높은 편이죠. 오랜 시간 밤새 작업하는 날이 많다 보니 시력도 많이 안 좋아졌어요(웃음).
그래서 이렇게 긴 과정들이 힘에 부칠 때가 많아요. 하지만 복원 전후의 작품을 비교할 때, 그 희열과 보람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그 순간 때문에 지금까지 작업을 지속할 정도로요. 저희가 복원한 작품을 보고 많은 분이 “한국화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면서 한국화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알게 되는데요. 무척 뿌듯하기도 하고 도리어 저희가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서포터분들과 함께 완성한
‘애국 선순환 구조’
올해 초에는 ‘한국화 마리갤 시리즈’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한국화를 원하는 곳에 미술관처럼 큰 사이즈로 감상할 수 있도록 포스터로 제작한 프로젝트였는데요. 기존 <한국화 시리즈 1> 단원 김홍도 편에 참여해 주신 서포터분들의 요청으로 시작된 펀딩이에요. 저희에게는 와디즈를 통해 새로운 니즈를 발견하고, 한국화를 알리는 새로운 방법에 도전해 본 계기가 되었죠.
지난 2년간 ‘한국화 시리즈’와 ‘마리갤 시리즈’로 펀딩을 지속해 오면서, 한국화를 알리는 동시에 총 100점~150점 정도 되는 작품을 복원했어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많아야 한 두건의 복원이 진행되는 기간에, 저희는 서포터분들의 응원과 지지를 받아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죠.
펀딩으로 모인 비용으로 다른 작품을 복원할 수 있게 되고, 복원된 작품을 다시 한번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구조가 된 거예요. 저희가 이름 붙인 이 ‘애국 선순환 구조’에 참여해 주시고, 출판에 도움을 주신 서포터분들의 성함을 책에 넣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대판 문화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해요.
경험이 큰 자산이 되는 와디즈 펀딩
저희는 앞으로도 <한국화 시리즈>를 통해 더 많은 한국화와 화가를 소개해나갈 예정이에요. 일단 <한국화 시리즈 2> 겸재 정선편의 펀딩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서, 12월 안에 완성된 제작물을 서포터분들께 잘 전달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올 한 해에는 좋은 소식이 또 있었는데요. 지난 10월, 한국화 한지 노트로 ‘2022 대한민국 관광공모전’ 기념품 부문에서 한국관광공사 사장상을 받았어요. 와디즈에서 포스터로 제작한 ‘한국화 마리갤 시리즈’와 더불어 책 이외의 다른 경로로, 더 일상적인 순간에 한국화를 즐길 방법을 계속해서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죠. 펀딩으로 도전을 시작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처음의 저와 같이 펀딩을 고민하는 분이 계신다면 겁이 나고, 실패가 두렵고, 걱정이 앞서더라도 일단 도전해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한 번에 성공하자는 마음보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다 경험과 자산이 된다는 마인드면 더욱 좋을 것 같고요.
저도 정말 겁이 많이 났고, 불안했지만 일단 해본 거거든요. 서포터의 입장에서 프로젝트가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많이 고민해 보신다면 좀 더 좋은 결과를 얻으실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저희 댓타임비도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뜻깊은 프로젝트를 이어갈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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